발걸음이 기억하는 도시
상하이라는 도시는 한 번 걸으면 다시 걷고 싶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아내와 단둘이 3박 4일로 상하이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처음엔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중국 여행이라고 하면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같은 베이징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고, 상하이는 그냥 큰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와이탄 강변에 서서 푸동의 야경을 마주한 순간, 이 도시가 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지 바로 알겠더군요. 그 뒤로 3일 동안 골목골목을 걸었고, 걸을수록 빠져들었습니다. 상하이 가볼만한곳을 묻는 분들에게, 제가 직접 걸어본 7곳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와이탄, 상하이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곳
어떤 도시든 첫인상을 결정짓는 장소가 있습니다. 상하이에서는 그게 와이탄이었습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택시를 타고 달려갔는데, 해 질 무렵에 도착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와이탄은 황푸강 서쪽을 따라 약 1.5km에 걸쳐 늘어선 산책로입니다. 한쪽에는 1920~30년대에 지어진 유럽풍 석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강 건너편에는 동방명주, 상하이타워, 세계금융센터 같은 초현대식 마천루가 빛을 뿜고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풍경은 정말 독특합니다. 저는 해 지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하늘이 주황색에서 남색으로 바뀌는 걸 지켜봤는데, 그 사이에 하나둘 켜지는 푸동의 불빛이 황푸강에 반사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일몰 30분 전에 도착해서 일몰 후 1시간까지 머무는 게 최적입니다. 야경이 가장 화려한 시간대가 바로 그때입니다. 주말 저녁에는 인파가 엄청나니, 가능하면 평일 저녁을 노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금요일 저녁에 갔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산책로 북쪽 끝이 상대적으로 한적하니, 사진을 찍고 싶다면 그쪽으로 걸어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예원, 600년 된 정원에서 숨을 고르다
화려한 야경을 본 다음 날,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상하이를 만났습니다. 예원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원은 1559년 명나라 시대에 조성된 전통 정원입니다. 면적은 약 2만 제곱미터로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연못과 정자, 기암괴석, 용 장식의 담벼락이 어우러져 작은 공간 안에 하나의 세계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40위안(약 7,500원) 정도인데, 이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정갈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예원 바깥에는 예원상장이라는 전통 상업거리가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서 샤오룽바오를 맛볼 수 있는 난쉐탕이 유명한데, 줄이 상당히 깁니다. 저는 1층 포장 매장에서 사 먹었는데 6개에 20위안(약 3,700원) 정도였습니다. 얇은 피 안에 뜨거운 육즙이 가득한데,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흘러나오는 국물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다만 2층 매장은 별도 입장료가 있고 웨이팅도 훨씬 길어서, 시간이 없다면 1층에서 간단히 맛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오전 9시 개장 직후에 방문하면 비교적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조계지와 우캉로, 걷는 것 자체가 여행
상하이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의외로 관광 명소가 아니라 동네 골목이었습니다. 프랑스 조계지 일대를 걷다 보면, 여기가 중국인지 유럽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옵니다.
프랑스 조계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조계였던 지역으로, 지금은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유럽풍 건축물, 감각적인 카페와 부티크가 모여 있는 상하이의 대표 산책 코스입니다. 특히 우캉로는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거리인데, 1930년대 아르데코 양식의 우캉맨션이 이 거리의 랜드마크입니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 있습니다.
저는 우캉로에서 시작해 안푸로, 우루무치로를 거쳐 헝산로까지 약 2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고, 독립 서점에 들어가 구경하고, 골목 안 작은 갤러리를 기웃거리고. 아무 계획 없이 걷는 게 이 동네의 정답이었습니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걸음걸음마다 눈에 담기는 것들이 있는 그런 곳입니다. 아내는 이 일대에서 보낸 오후가 상하이 여행 전체에서 가장 좋았다고 했습니다.
푸동 루자쭈이, 하늘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다
와이탄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감탄했다면, 이번에는 그 건너편으로 직접 건너가 볼 차례였습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루자쭈이역에 내리면, 말 그대로 마천루 숲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푸동 루자쭈이는 상하이의 금융 중심지이자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지역입니다. 동방명주, 상하이타워, 상하이 세계금융센터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세 곳 중에 상하이타워 전망대를 선택했는데, 높이가 632m로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118층 전망대 입장료는 180위안(약 33,000원)이었는데, 맑은 날에 올라가면 상하이 시내 전체가 발아래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올라간 날은 다행히 날씨가 맑았습니다. 전망대에서 와이탄 방향을 바라보니, 어젯밤에 서 있던 산책로가 까마득히 작게 보이더군요. 그 순간 상하이라는 도시의 스케일을 실감했습니다. 참고로 오전에 방문하면 대기 시간이 짧고, 오후 늦게 가면 석양과 야경 전환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몰 시간대는 인파가 몰리니, 넉넉히 1시간 전에 도착하시는 게 좋습니다. 동방명주는 솔직히 건물 외관이 워낙 유명해서 밖에서 사진만 찍어도 충분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티엔즈팡, 골목 안에 숨은 상하이의 감성
큰 건물과 넓은 도로만 봐왔다면, 이번에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볼 때입니다. 티엔즈팡은 상하이의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티엔즈팡은 과거 주거지였던 스쿠먼 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예술 골목입니다. 좁은 미로 같은 골목길 사이로 수공예 상점, 아트 갤러리, 카페, 기념품 가게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입장료는 없고, 지하철 9호선 다푸치아오역에서 도보 5분이면 도착합니다. 저는 여기서 아내에게 줄 찻잔 세트를 하나 샀는데, 40위안(약 7,400원)에 패키지가 예뻐서 선물용으로 딱이었습니다.
다만 주말 오후에는 골목이 좁아서 사람에 치이는 수준입니다. 저는 평일 오전에 갔는데도 꽤 붐볐으니, 주말이라면 각오를 하시거나 이른 오전을 노리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관광지화되면서 가격이 좀 올라갔다는 것인데, 흥정이 가능한 가게도 있으니 가격표가 없다면 한 번쯤 깎아달라고 해보셔도 됩니다. 골목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덜 관광지스럽고 더 독특한 가게들이 나오니, 입구 근처에서만 돌다 가시면 안 됩니다.
프라다 롱자이, 상하이의 새로운 얼굴
상하이가 옛것만 잘 보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이 도시는 옛것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데도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라다 롱자이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프라다 롱자이는 징안구 베이산시로(北陕西路) 186번지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원래 1918년에 지어진 중국 재벌 룽쭝징의 사저였는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약 6년에 걸쳐 복원해 2017년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감독 왕가위와 협업한 다이닝 공간 미샹이 2층에 오픈하면서, 2026년 상하이에서 가장 핫한 공간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예약 없이 워크인으로 방문했는데, 운 좋게 테라스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앉을 수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에 68위안(약 12,500원) 정도로 가격은 좀 있지만, 100년 넘은 저택의 인테리어를 감상하면서 마시는 커피는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평일 오후 2시~4시 사이가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대이고, 주말에는 웨이팅이 1시간 이상일 수 있으니 시간 여유를 두고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건물 1층은 프라다 전시 공간으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니, 카페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들어가 보실 가치가 있습니다.
난징동루, 상하이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다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 난징동루를 걸었습니다. 조용한 골목길을 좋아하는 저한테 이 거리는 좀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난징동루는 상하이의 대표 쇼핑거리이자 보행자 전용 도로입니다. 와이탄에서 인민광장까지 약 1.8km에 걸쳐 백화점, 브랜드 매장, 먹거리 가게가 줄지어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양쪽 건물의 네온사인이 일제히 켜지면서 거리 전체가 거대한 조명 터널처럼 변합니다. 상하이의 활기와 에너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쇼핑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이 거리를 한 번 걸어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입니다. 저는 길거리 간식으로 취더우푸(臭豆腐)를 먹어봤는데, 냄새는 강렬했지만 맛은 의외로 고소했습니다. 10위안(약 1,800원)이면 한 접시를 살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난징동루 끝에서 와이탄까지는 도보 10분 거리이니, 저녁에 난징동루에서 시작해 와이탄 야경으로 마무리하는 동선을 추천합니다. 제가 했던 바로 그 코스였는데, 상하이 여행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상하이를 떠나오면서 든 생각은, 이 도시는 한 번으로 다 보기엔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이탄의 야경도, 예원의 고요함도, 프랑스 조계지의 낭만도, 푸동의 압도감도 모두 같은 도시 안에 존재합니다. 3박 4일로는 그 표면만 훑은 것이지만, 그 표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처음 상하이에 가시는 분이라면, 이 7곳을 지도에 찍어놓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상하이는 골목골목마다 예상 못한 장면을 선물해 주는 도시니까요. 다음에는 주가각이나 우전 같은 수향마을까지 발을 넓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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